[기타]다시 ‘신’나게 울리는 소리 - 미디어와 함께하는 국가유산 '향유'

2026-06-09
조회수 222

다시 ‘신’나게 울리는 소리 - 미디어와 함께하는 국가유산 향유

- K-콘텐츠가 실어 나른 국가유산, 그리고 한 세기 전 외국인의 귀 -

d1dcd51693f94.png

2020년 초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슈가의 〈대취타〉, 

우원재의 〈강강술래〉. 

세계가 재생한 이 노래들 속에는 하나같이 국가유산이 들어 있습니다. 

같은 유산을 한 세기 전 외국인은 어떻게 만났을까입니다.

두 시대의 귀를 나란히 놓아 봅니다.


최근 K-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한국의 국가유산을 향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0년대 초의 이날치 〈범 내려온다〉, 슈가 〈대취타〉, 우원재 〈강강술래〉, 유튜브 등 미디어를 통해 세계가 재생한 이 노래들 속에는 하나같이 국가유산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음악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일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멀리는 한 세기 전, 한국의 소리를 서양 악보에 받아 적은 외국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 질문은 전환해 봅니다. K-pop에 왜 하필 20년 초, 왜 이 노래들이 세계적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 글은 질문을 따라가 봅니다. 하나는 '어떻게 퍼졌는가'(미디어와 접근성), 다른 하나는 '무엇을 담았는가'(국가유산)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또렷하게 비추는 거울로, 구한말 한국을 직접 본 외국인의 기록을 나란히 놓겠습니다.

미리 한 가지를 밝혀 두면, 이 글이 닿으려는 자리는 이렇습니다. 미디어는 국가유산을 즐기고 누리는 일, 곧 향유의 가치를 키워 왔고, 국가유산의 재해석은 그 유산이 지닌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하나의 해석 방법이라는 것으로 3개의 곡은 이 사례를 보여줍니다.

같은 유산을 두고 '구경'에 그쳤던 외국인의 시선이 어떻게 '참여'로까지 옮겨 왔는지,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한류는 처음이 아닙니다만..? - 무대를 돌던 소리, 화면으로 울리는 소리

외국인이 한국 음악에 빠져든 게 최근 K-pop 스타들의 활약 덕이라 여기기 쉽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 진출은 그보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대, 보아와 동방신기가 일본 시장을 파고들었고, 빅뱅과 소녀시대가 아시아를 넘어섰으며, 원더걸스는 미국의 문까지 두드렸습니다. 실제로 2009년 10월, 원더걸스의 〈Nobody〉 영어 버전은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76위로 진입합니다.

다만, 그 길은 결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더걸스는 그해 여름 조나스 브라더스의 북미 투어 오프닝으로 전국을 돌았고, 투어 버스에서 잠을 자며 라디오와 시상식을 누볐습니. 막대한 현지 프로모션과 기획사의 치밀한 전략이 만들어 낸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간 것은,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영어 팝'이었습니다.

K-Pop 콘텐츠 소비 방법이 뒤집힌 건 2012년입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해 7월 유튜브에 오른 뒤, 12월에는 유튜브 사상 최초로 10억 조회를 돌파합니다. 수년의 현지 활동이 하던 일을, 온라인과 접근성이 단 몇 달 만에 해낸 셈입니다. 미디어가 한류의 엔진 자체를 바꿔 놓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글이 다루는 세 곡(이날치 〈범 내려온다〉, 슈가 〈대취타〉, 우원재 〈강강술래〉 )은 바로 그 전환 위에 서 있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노래들은 같은 온라인·미디어의 힘을 타고 퍼지되, 그 안에 '국가유산'을 담았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옛것으로 박물관에 머무는 대신, 오늘의 비트와 영상으로 다시 해석된 형태로 전해집니다. 그러니 이 현상은 'K-pop이 또 하나 떴다'로 요약될 일이 아닙니다. 

판소리와 대취타와 강강술래가, 세계가 스스로 찾아 재생하는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이 글이 주목하려는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2020년 6월 슈가의 〈대취타〉 역시 빌보드 핫 100에 '76위'로 올랐는데, 약 10년 전 원더걸스가 찍었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두 곡이 차트에 함께 오른 적은 없지만, 약 10여 년 사이 한국 가수가 같은 76위에 올린 노래의 '속'이 동시대 영어 팝에서 조선의 군례악으로 바뀐 셈입니다. 이는 K-Pop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일종의 세계적 관심이 보여진 사례로 읽힙니다.


2. 들어도 들리지 않던 소리 - 100년 전 한국의 소리를 들은 외국인의 귀

오늘날 우리는 손안의 화면으로 언제든 한국의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미디어가 없던 시절, 외국인이 한국 음악을 만나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직접 이 땅에 와서, 제 귀로 직접 듣는 것입니다.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육영공원(育英公院) 영어 교사로 조선에 건너온 지 10년 째 되던 해, 그는 영문 월간지 『The Korean Repository』 2월호에 「Korean Vocal Music」을 싣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아리랑을 서양식 오선보로 옮겨 한국 민요가 활자(인쇄본)로 서양 악보화된 중요한 사례로 언급되곤 합니다.

5bce2089a3e74.png322f7b796430d.png
4351aa2ed9c89.png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Vol. III (Feb. 1896)


그런데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채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가 왜 서양 귀에 낯선지를 짚은 문장에 있습니다.


그 소리는 기이하고 전혀 즐겁지 않게 들린다. 우리가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한국인의 기질과 훈련이 아니라 더 인공적인 서양의 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The sounds seem peculiar and are far from pleasing, because we do not know or feel what they are intended to express and we bring to them not the Korean temperament and training but the more artificial western ear.” - Homer B. Hulbert,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Vol. III (Feb. 1896), p. 45.

낯섦의 책임을 한국 음악이 아니라 '서양의 귀'에 돌린 셈입니다. 그래서 그는 글머리에서 독자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그러니 부디, 말하자면 한국의 귀로 들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한국 음악에 대한 판단을 미뤄 주시기 바란다.

“So I beg you to suspend your judgment of Korean music until you can listen to it, so to speak, with Korean ears.” - Homer B. Hulbert,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Vol. III (Feb. 1896), p. 45.


직접 와서 듣고도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낮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을 표현하면서 'Korean ears(한국의 귀)'라는 표현을 하며 Artificial Western ear과 대조를 이루어 한국 음악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한 세기 전, 한국의 소리에 닿는 길은 이토록 좁고 더뎠습니다. 이 출발선을 기억해 두면, 세 곡이 만들어 낸 변화가 한결 선명해집니다. 이제 그 세 곡을, 같은 유산을 직접 목격했던 외국인의 기록과 하나씩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범 내려온다〉 - 악보에 가둘 수 없던 신명(神明)

현대 이야기는 2020년 7월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Feel the Rhythm of Korea'는 국악을 재해석한 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 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함께한 영상으로, 전 플랫폼 합산 2억 회 이상을 기록하며 이른바 '1일 1범'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공격적인 광고 집행을 통해 진행된 유행으로, '저절로 폭발한 신드롬'이라기보다, 잘 만든 K 콘텐츠의 세계적 시장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 결과 해외 투어나 현지 방송이 아니라 화면을 통해 퍼졌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라 부르고 춤추고 패러디를 쏟아 낸 반응 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유행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930547415dc56.png1b54c038dada2.png

 'Feel the Rhythm of Korea'  한국관광공사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Feel the Rhythm of KOREA♬ 속 

서울 & 목포 랜선 여행


후렴구 "범 내려온다"가 워낙 강렬했지만, 사실 이 대목은 새로 지은 노랫말이 아닙니다. 판소리 〈수궁가(水宮歌)〉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사설입니다.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토별가(兎鼈歌)·토끼타령으로도 불리며 소설 『별주부전』·『토끼전』의 근간이 된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를 잠깐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용왕이 병들었는데 약이 하필 토끼의 간이라, 자라(별주부)가 육지로 올라가 토끼를 꾀어 데려가려 합니다. '범 내려오는 대목'은 바로 그 길목에서 벌어집니다. 먼 길에 지친 자라가 토끼를 부른다는 게 그만 '토(兎)선생'을 '호(虎)선생'으로 잘못 발음하고, 호랑이가 제 이름인 줄 알고 산에서 기세등등하게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이날치는 바로 이 장면의 사설을 현대적 비트 위에 거의 그대로 얹은 것입니다.

846dc52b36fdf.png

0982eecde3be4.png

별주부전(필사본), 가로 19.2cm, 세로 30.3cm, 국립한글박물관

(사진 출처 : 이뮤지엄)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78호 판소리 수궁가, 가로 18.9cm, 세로 26.0cm, 국립한글박물관

(사진 출처 : 이뮤지엄)

판소리의 중요성과 가치는 이러한 현대적 해석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고, 2003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뒤 2008년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통합 등재됐습니다. 형식을 들여다보면, 소리꾼 한 사람이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춰 창(소리)·아니리(말)·너름새(몸짓)로 긴 서사를 끌고 가는 1인 음악극인데, 17세기 말 이래 고정된 악보 없이 구전과 즉흥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전승 갈래도 뚜렷해서 전라도 동북의 동편제, 서남의 서편제, 경기·충청의 중고제로 나뉘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악보 없는 즉흥성'을 한 세기 전 헐버트가 이미 소개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한국 고전 성악(시조)을 오선보에 옮겨 보려다 곧 한계를 인정합니다.


“…it must be remembered that the classical style scorns bars.”

…다만 고전 양식은 (악보의) 마디를 거부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Homer B. Hulbert,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Vol. III (Feb. 1896) , p. 46.
  고전 양식(시조)을 논하는 대목.

한 음을 길게 끌어가는 창법 앞에서, 서양에서 익힌 음악적 지식이 번번이 가로막혔던 것이죠. 아리랑을 두고도 그는 비슷한 곤혹을 적습니다.

“…this tune is made to do duty for countless improvisations in which the Korean is an adept.”

…이 가락은 한국인이 능란하게 다루는 무수한 즉흥의 바탕으로 쓰인다.

-  Homer B. Hulbert, “Korean Vocal Music,” The Korean Repository, Vol. III (Feb. 1896) , p. 50,
   아리랑을 소개하는 대목.

그가 '담아내기 어렵다'며 곤혹스러워한 그 구술성과 즉흥성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판소리의 본질이라 부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헐버트의 글은 시조와 아리랑을 비롯한 한국 성악 '전반'을 다룬 것이지, 판소리를 따로 분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위 인용은 '판소리 평'이 아니라 '한국 소리 일반을 대하는 외국인의 태도'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

그럼에도 대조의 구도만큼은 선명합니다. 1896년의 외국인은 한국 노래를 들으려 직접 이 땅에 와서, 그마저도 오선보에 '받아 적으려' 애썼습니다. 2020년의 외국인은 같은 소리를 손안의 화면으로 통역 없이 '그대로 재생'합니다. 달라진 것은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에 닿는 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헐버트가 그토록 청했던 '한국의 귀'가, 이제는 미디어를 타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4. 〈대취타〉 - 한 세기 전엔 ‘소음’, 오늘은 세계의 비트

다음 곡은 2020년 5월로 무대를 옮깁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는 'Agust D'라는 이름으로 〈대취타〉를 발표하면서 전통 군악 대취타를 통째로 샘플링했습니다. 곡은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라는 호령으로 문을 열고, 뮤직비디오는 조선 궁궐을 본뜬 세트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만 4억 회를 넘겼습니다. 군례악을 샘플링한 노래가, 세계 팬들의 손끝에서 그만큼 재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취타'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대취타(大吹打)는 임금의 행차나 군례(軍禮) 때 연주하던 군례악으로, 아명은 무령지곡(武寧之曲)입니다. 이름부터가 편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취(吹)'는 부는 악기를, '타(打)'는 치는 악기를 가리키죠. 관악기는 셋입니다. 소라로 만들어 낮고 부드러운 한 음을 내는 나각(螺角), 길이가 1m를 넘는 긴 관으로 나각과 번갈아 우는 나발(喇叭), 그리고 유일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태평소(太平簫)입니다. 여기에 용고(龍鼓)·자바라(啫哱囉)·징(鉦) 같은 타악기가 리듬을 받칩니다. 시작하는 방식조차 의례화돼 있어서, 취타대를 이끄는 집사(執事)가 지휘봉인 '등채'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명금일하대취타 하랍신다"라 호령하면, 악사들이 "예이" 하고 받은 뒤 징이 한 번 울리고 용고가 변죽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합주가 시작됩니다.

참고로 '대취타'라는 용어가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은 1612년(광해군 4) 송한교의 『연병지남(練兵指南)』이고, 조선의 행렬 악대는 임금의 수레를 기준으로 앞쪽의 전부고취(前部鼓吹)와 뒤쪽의 후부고취(後部鼓吹)로 나뉘어 섰습니다. 슈가의 곡이 살린 그 "명금일하"가, 실은 이렇게 수백 년 묵은 절차의 첫 마디였던 셈입니다.

7494f39e2f7e3.png

ecf526069ceda.png

(사진 출처 : 이뮤지엄)


미디어의 힘은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슈가의 발표 직후, 국립국악원이 4년 전 올려 둔 대취타 설명 영상의 조회수가 수백 회에서 17만 회로 치솟았고, 해외에서 빗발친 해설 요청에 국악원은 영어 제목과 자막을 단 버전을 발 빠르게 새로 제작했습니다(SBS·국민일보 등). 영상 댓글에는 "이 곡 덕분에 국악을 배웠다"는 외국 팬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습니다. 노래 한 곡이, 국가유산 기관의 콘텐츠를 외국인이 '찾아보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군악을, 꼭 한 세기 전에 직접 들은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1894년, 비숍은 임금(고종)이 왕조의 사당(종묘)에 제향하러 가는 거둥 행렬을 서울 한복판에서 지켜봅니다. 그는 이 행렬을 “내가 본 가장 놀라운 광경 중 하나(one of the most remarkable spectacles I ever saw)”(Bishop 1898: 50)라 적으면서, ‘아마도 그 영화(榮華)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바로 그해 군영(軍營)이 철폐되며 행렬 악대를 맡던 취고수(吹鼓手)가 사라졌으니, 그는 소멸을 목전에 둔 군례악을 우연히 목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정작 그 군악만큼은 비숍의 귀에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But of the noises which passed for music, the most curious as to method was that made by the drummers, who marched irregularly in open order in lines extending across the broad roadway.”

그러나 음악으로 통하던 소음들 가운데 방식 면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넓은 길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흩어진 채 줄지어 행진하던 북 치는 자들이 내는 소리였다.

-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urs (New York: Fleming H. Revell, 1898), Ch. III, p. 53.

“트럼펫의 팡파르와 날카로운 비명 같은 횡적 소리(a fanfaronade of trumpets and the shrill scream of fifes)”가 임금의 출궁을 알렸다고 묘사하면서도(Bishop 1898: 55), 그는 이 광경 전체를 “지상 어디에도 없는… 야만적 중세풍(in the full splendor of a barbaric mediævalism)”(Bishop 1898: 55)이라 불렀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것이 연출된 쇼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못 박아 두었지습니다.


“…the people taking part in the pageant are not men hired and dressed up by a costumier, but that they are actual Court officials and noblemen in the dress of to-day…”

…이 행렬에 참여한 이들은 의상업자가 고용해 차려입힌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 궁정 관리와 귀족들이며, 그들이 입은 것은 바로 오늘의 복식이다.

-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urs (New York: Fleming H. Revell, 1898), Ch. III , p. 58.

물론 여기에도 단서가 필요합니다. 비숍은 행렬의 음악을 '취타·고취악' 일반으로 묘사했을 뿐, '대취타'라고 콕 집어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 장면은 "거둥의 군악, 곧 대취타"로 연결해 읽는 것이 옳겠습니다.

연결의 묘미는 그다음에 있습니다. 비숍이 길가에 서서 '소음'으로 듣고 지나친 그 행진 음악을, 124년 뒤의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든 화면을 열어 4억 번 넘게 재생합니다. 그저 듣기만 하는 것도 아니어서, 가사를 이해하려 조선의 역사까지 찾아 읽고 있습니다. 한쪽은 도성 거리에 우연히 서 있어야만 닿을 수 있던 군례악이고, 다른 한쪽은 전 세계가 동시에 접속하는 콘텐츠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


5. 〈강강술래〉 - 구경하던 원에서, 함께 도는 원으로

세 번째 곡은 2021년 9월로 갑니다. 한국관광공사가 '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2를 '힙합'을 콘셉트로 내놓았고, 그 가운데 'Gyeongju & Andong' 편이 우원재의 〈강강술래〉입니다(2021년 9월 공개). 국악 가창을 토대로 한 힙합 버전으로, 경주의 월정교·대릉원·첨성대·동궁과 월지·불국사, 안동의 월영교·병산서원을 차례로 배경으로 담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 공식 채널은 이 곡을 '정월대보름, 한 해 첫 보름달의 축제에 부르던 민요'로 소개하고, 여럿이 둥글게 모여 손을 맞잡고 앞소리꾼의 인도에 따라 추던 춤이며, 노랫말은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비는 기원이라 설명합니다.

앞의 두 곡을 떠올려 보면 차이가 또렷해집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를 '듣는' 예술이고, 대취타는 행렬을 '보고 듣는' 의장악이었습니다. 둘 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우리는 객석에서 그것을 향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강강술래는 다릅니다. 이것은 구경하는 노래가 아니라, 누구나 손을 맞잡고 끼어드는 놀이입니다. 노래 잘하는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가 "강강술래"로 받는 선후창(先後唱)이고, 느린 긴강강술래로 시작해 중강강술래를 거쳐 잦은강강술래로 갈수록 빨라지며 달아오릅니다. 원은 사람이 늘수록 커지고, 한번 손을 잡은 사람은 곧 구경꾼이 아니라 춤의 일부가 됩니. 형식 그 자체가 처음부터 '참여'였던 셈입니다. 이 유산은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도 올랐습니다.

a3ec28848676b.jpg

e587ff3869213.jpg


한 가지, 이 강강술래의 기원을 두고는 학설이 갈립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설입니다. 이순신이 부녀자들을 남장시켜 옥매산을 돌게 함으로써 적에게 아군이 많아 보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이 설보다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는 한자 풀이 역시 후대에 갖다 붙인 민간어원으로 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설이 굳어진 데에 제도적 계기가 있었다는 점입니. 1965년 12월 2일자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제2분과)의 지정 사유에는 "민속전래의 고유 오락이며 민요인 동시에 임진왜란과 관련시켜 민족적 자부와 긍지를 갖는 데 유익하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고, 1960년대 국가 차원의 보급이 강강술래를 전국적인 민속놀이로 키웠습니다. 

반면 학계의 다수설은 농경·제의 기원설입니다. 달 밝은 밤의 축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인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조에는 파종을 마친 5월에 귀신을 제하며 수십 명이 함께 춤추고 땅을 밟았다는, 강강술래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도 비금도 뜀뛰기 강강술래의 계보를 마한의 윤가무(輪歌舞)에서 찾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앞서 본 한국관광공사의 영상조차 강강술래를 '정월대보름 만월의 축제 노래'로 소개하는데, 이는 임진왜란설이 아니라 바로 이 만월·농경 기원설에 선 설명입니다.

여기서 이 글이 따라온 외국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겹쳐집니다. 헐버트는 시조 앞에서 오선보를 내려놓았고, 비숍은 거둥의 군악을 '소음'이라 적었습니다. 바깥에서 들여다본 그들의 귀는 번번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런데 강강술래는 사정이 다릅니다. 손을 맞잡고 둥글게 도는 '원무(圓舞)'는 어느 문화에나 있는 형태여서, 최근 연구도 강강술래를 서양의 서클댄스와 나란히 놓고 그 상호문화성을 읽습니다. 바깥의 시선이 부딪혀 튕겨 나가는 대신, 같은 모양을 알아보고 원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한말의 외국인이 멀찍이 서서 바라보던 그 자리에, 오늘의 외국인은 손을 내밀어 끼어듭니다. '구경'에서 '참여'로 시선이 옮겨 오는 그 겹침의 한복판에, 강강술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매개한 것이 바로 재해석입니다. 한국관광공사의 힙합 버전은 강강술래를 옛 놀이로 묻어 두는 대신, 오늘의 리듬과 영상으로 다시 풀어 그 안에 깃든 '함께 도는' 가치를 끄집어냈습니다. 재해석은 원형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유산이 품은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옮겨 읽는 하나의 해석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된 가치를, 미디어가 더 많은 사람의 손에 쥐여 줍니다. 강강술래의 무게가 '얼마나 멀리 퍼졌나'에 있지 않다고 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6. 바뀐 것은 소리가 아니라, 소리에 닿는 길

세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국의 국가유산에 '닿는 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헐버트와 비숍의 시대에는 직접 이 땅에 와서, 거리에 서서, 제 귀로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마저도 '외국인의 귀'로 들어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다릅니다. 세계 어디서든 화면을 열어 즉시 재생하고, 따라 부르고, 역사를 검색하고, 콘텐츠를 다시 만듭니다. 과거와 현대의 문화 향유, 그 사이를 메운 것이 바로 미디어와 접근성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국가유산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미디어는 국가유산을 '향유'하는 일의 문턱을 낮추며 그 가치를 키웠고, 재해석은 그 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어 내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만 마냥 자축할 일만은 아닙니다. 두 시대의 시선이 모두 '타자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은 짚고 가야 합니다. 비숍의 "야만적 중세풍"이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의 언어였다면, 오늘의 '힙한 소비' 역시 국가유산을 한철 배경음악이나 밈으로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미디어의 도달력이 곧 이해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활용이 원형을 가볍게 소비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니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유산 그 자체의 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유산에 닿는 길과 태도일 뿐, 유산의 깊이가 외국인의 평가에 따라 늘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7. 닫으며 — 다시 울릴 때 살아나는 소리

한 세기 전의 기록을 오늘의 노래들과 나란히 놓고서야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됩니다. 국가유산은 매 시대 새로 불리고 다시 쓰일 때 비로소 살아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다시 쓰기', 곧 재해석은 원형을 흩뜨리는 일이 아니라 유산의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읽어 내는 떳떳한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무형유산의 현대적 재해석과 콘텐츠 해석은 국가유산을 사람들이 즐기고 누리는 향유의 대상으로 되돌린 일입니다. 그리고 한 세기 전에는 없던 미디어가, 이제 그 유산이 세계로, 또 다음 세대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이 노래들을 즐기는 일 자체가, 실은 유산을 전승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2 0

상호명 : 사단법인 한국전통미술융합진흥원

대표자 : 홍선호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28, 5층 500호-32 

e-mail : ktaca3326@ktaca.or.kr 

전화번호 : 02-733-3326

Fax : 02-747-9847 

사업자 등록번호 : 847-82-00370

통신판매업 등록번호 : 제 2023-서울종로-0013 사업자정보확인 >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번호 : 제 24109-2022-000011

COPYRIGHT (c) 2022 BY Korea Traditional Art Convergence Agency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