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천절 국경일로 지정되다.
개천절은 ‘開天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국경일입니다. 본래 개천절은 단군과 관련된 종교적 의미가 더 강한 기념일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군을 추모하는 대규모 ‘개천절’ 행사를 음력 10월 3일에 거행하였습니다.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 11월 27일자에 단군의 탄생을 축하하는 ‘大皇祖聖誕節’이자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建國記念日’로 선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됩니다.
‘음력 10월 3일은 우리 대한민족의 초조(初祖)이신 천제(天帝) 단군의 개천경절이라 … 독립만세의 기초(基)를 건축하려함은 실로 우리 초조의 유전(遺傳)하신 영혼의 위력으로 활동함이니 우리들이 이날을 마땅히 더욱 홍은(洪恩)을 기념…’
『독립신문』, 1919년 11월 27일, 「개천경절의 감언」
‘지난 24일은 우리 大皇祖聖誕節이오 또 건국기념일이라…’
『독립신문』, 1919년 11월 27일, 「대황조성탄식과 건국기원절축하식」
이 밖에도 신문, 잡지 등지에서 단군 의식을 고취하는 기록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로 이승만, 안창호 등 단군사상에 경외를 표하는 내용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대종교가 체계화한 단군사상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강력한 사상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민간에서 먼저 기념된 음력 10월 3일은 1920년대 국가적 기념일로 위상이 높아졌고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정식 국경일로 정해졌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국회가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제53호, 1949.10.1공포)을 제정시 ‘국가에 경사로운 날’인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과 함께 개천절이 4대 국경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음력으로 시행되던 개천절은 양력으로 고정되어 기념되게 되었습니다.
2. 개천절과 단군과 관련된 문화재
1) 단군 초상화
단군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의 모습은 기록으로 상세히 전하고 있지 않으나 근대기 제작된 초상화를 통해 단군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 곡성 단군전에 단군영정을 관리하고 있는데 독특한 점은 단군의 이목구비가 유사하고 머리, 어깨 등 장식 들이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군영정이 현재까지 총 17점(도안, 초상 등 전부 포함)이 전하고 있어 20세기 초 단군의 초상화를 제작시 화본과 공유되고 있던 단군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인호(鄭寅琥, 1869~1945)가 정치사를 중심으로 『초등대한역사』의 ‘단군조선’에 「단군을 창립하신 단군의 상」으로 실은 삽화 상반신 역시 유사한 형태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0년 일한신궁을 짓기위해 『神宮建築誌』에 「대조선국시조 단군천황」으로 목판본으로 실려 있습니다. 목판이라는 특성 상 간략화되어 표현되었으나 머리 장식, 나뭇잎으로 덮은 어깨, 수염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유사합니다. 단군의 초상은 20세기 널리 통용되고 있던 이미지를 토대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 
|
| 『초등대한역사』의 ‘단군조선’에 「단군을 창립하신 단군의 상」 | 『神宮建築誌』에 「대조선국시조 단군천황」 | <부여천진전단군화상>, 20세기, 53x34cm, 국립부여박물관 |
2) 마니산 강화도 참성단
개천절로 단군을 기념하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에 대한 제사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참성단은 제사, 단군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으로 15세기 작성된 문헌인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산(摩利山)【부(府)의 남쪽에 있으며, 산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 한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 10, 지리 1
진산(鎭山)은 고려 마리산(摩利山)이다. 【부(府) 남쪽에 있다.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궁글며, 단 위의 사면(四面)이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산기슭에 재궁(齋宮)이 있는데, 예로부터 매년 봄·가을에 대언(代言)을 보내어 초제(醮祭)를 지내었다. 금상(今上) 12년 경술에 비로소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재궁 벽 위에 ‘동(東)’자 운(韻)의 시(詩)가 있으니, 태종(太宗)이 잠룡(潛龍) 때에, 일찍이 대언(代言)이 되어서 이곳에서 재숙(齋宿)할 때 이 시를 지은 것인데, 지금 널에 새기고 금으로 메웠다. 】
『세종실록』 권 148, 지리지, 부평 도호부, 강화도호부
위 기록에 따르면 단군이 살고 있던 시기에 지어진 제단이라는 설명이 되나 실질적으로 고조선이 존재하던 시기에 축조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단군과 일치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나타나지는 않으나 도교식 의례가 행해진 내용은 전하고 있습니다. 근대 대종교가 등장하고 단군과 관련된 성지로서 강하게 인식되고 현재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단군과 관련된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강화 참성단,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참고자료
서영대, 「근대 한국의 단군 인식과 민족주의」, 『동북아역사논총』20, 동북아역사재단, 2008.
서영대, 「참성단의 역사와 의의」, 『단군학연구』19, 고조선단군학회, 2008.
서영대, 「개천절과 강화도 참성단」, 『동아시아고대학』23, 동아시아고대학회, 2010.
김성환, 「20세기 초 단군 영정의 보급과 화본 검토」, 『동북아역사논총』65, 동북아역사재단, 2019.
유장철, 「睨觀 申圭植의 단군민족주의와 독립운동」, 단국대학교 한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
1. 개천절 국경일로 지정되다.
개천절은 ‘開天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국경일입니다. 본래 개천절은 단군과 관련된 종교적 의미가 더 강한 기념일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단군을 추모하는 대규모 ‘개천절’ 행사를 음력 10월 3일에 거행하였습니다.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 11월 27일자에 단군의 탄생을 축하하는 ‘大皇祖聖誕節’이자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建國記念日’로 선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됩니다.
‘음력 10월 3일은 우리 대한민족의 초조(初祖)이신 천제(天帝) 단군의 개천경절이라 … 독립만세의 기초(基)를 건축하려함은 실로 우리 초조의 유전(遺傳)하신 영혼의 위력으로 활동함이니 우리들이 이날을 마땅히 더욱 홍은(洪恩)을 기념…’
『독립신문』, 1919년 11월 27일, 「개천경절의 감언」
‘지난 24일은 우리 大皇祖聖誕節이오 또 건국기념일이라…’
『독립신문』, 1919년 11월 27일, 「대황조성탄식과 건국기원절축하식」
이 밖에도 신문, 잡지 등지에서 단군 의식을 고취하는 기록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로 이승만, 안창호 등 단군사상에 경외를 표하는 내용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대종교가 체계화한 단군사상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강력한 사상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민간에서 먼저 기념된 음력 10월 3일은 1920년대 국가적 기념일로 위상이 높아졌고 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정식 국경일로 정해졌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국회가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제53호, 1949.10.1공포)을 제정시 ‘국가에 경사로운 날’인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과 함께 개천절이 4대 국경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후 음력으로 시행되던 개천절은 양력으로 고정되어 기념되게 되었습니다.
2. 개천절과 단군과 관련된 문화재
1) 단군 초상화
단군신화의 주인공인 단군의 모습은 기록으로 상세히 전하고 있지 않으나 근대기 제작된 초상화를 통해 단군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 곡성 단군전에 단군영정을 관리하고 있는데 독특한 점은 단군의 이목구비가 유사하고 머리, 어깨 등 장식 들이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군영정이 현재까지 총 17점(도안, 초상 등 전부 포함)이 전하고 있어 20세기 초 단군의 초상화를 제작시 화본과 공유되고 있던 단군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인호(鄭寅琥, 1869~1945)가 정치사를 중심으로 『초등대한역사』의 ‘단군조선’에 「단군을 창립하신 단군의 상」으로 실은 삽화 상반신 역시 유사한 형태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0년 일한신궁을 짓기위해 『神宮建築誌』에 「대조선국시조 단군천황」으로 목판본으로 실려 있습니다. 목판이라는 특성 상 간략화되어 표현되었으나 머리 장식, 나뭇잎으로 덮은 어깨, 수염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유사합니다. 단군의 초상은 20세기 널리 통용되고 있던 이미지를 토대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 마니산 강화도 참성단
개천절로 단군을 기념하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에 대한 제사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참성단은 제사, 단군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으로 15세기 작성된 문헌인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산(摩利山)【부(府)의 남쪽에 있으며, 산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 한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 10, 지리 1
진산(鎭山)은 고려 마리산(摩利山)이다. 【부(府) 남쪽에 있다.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궁글며, 단 위의 사면(四面)이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산기슭에 재궁(齋宮)이 있는데, 예로부터 매년 봄·가을에 대언(代言)을 보내어 초제(醮祭)를 지내었다. 금상(今上) 12년 경술에 비로소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재궁 벽 위에 ‘동(東)’자 운(韻)의 시(詩)가 있으니, 태종(太宗)이 잠룡(潛龍) 때에, 일찍이 대언(代言)이 되어서 이곳에서 재숙(齋宿)할 때 이 시를 지은 것인데, 지금 널에 새기고 금으로 메웠다. 】
『세종실록』 권 148, 지리지, 부평 도호부, 강화도호부
위 기록에 따르면 단군이 살고 있던 시기에 지어진 제단이라는 설명이 되나 실질적으로 고조선이 존재하던 시기에 축조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단군과 일치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나타나지는 않으나 도교식 의례가 행해진 내용은 전하고 있습니다. 근대 대종교가 등장하고 단군과 관련된 성지로서 강하게 인식되고 현재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단군과 관련된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강화 참성단,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참고자료
서영대, 「근대 한국의 단군 인식과 민족주의」, 『동북아역사논총』20, 동북아역사재단, 2008.
서영대, 「참성단의 역사와 의의」, 『단군학연구』19, 고조선단군학회, 2008.
서영대, 「개천절과 강화도 참성단」, 『동아시아고대학』23, 동아시아고대학회, 2010.
김성환, 「20세기 초 단군 영정의 보급과 화본 검토」, 『동북아역사논총』65, 동북아역사재단, 2019.
유장철, 「睨觀 申圭植의 단군민족주의와 독립운동」, 단국대학교 한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