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태항아리, 아이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다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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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아기였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혹은 갓난 아기였을 때를 추억할 만한 물건을 가지고 계신가요?

 최근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탯줄을 탯줄 보관함에 넣어 보관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소독한 예쁜 유리병에 넣은 탯줄을 튼튼한 액자나 함에 넣거나, 탯줄 도장을 만드는 등 보관함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 탯줄 보관함은 아기가 막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추억하는 물건인 동시에 아기와 엄마가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의 탯줄 보관함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의미가 비슷한 물건이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문화유산인 태항아리입니다.


백자 태항아리, 높이 30cm, 입지름 18.6cm, 조선,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3127


 태는 태반과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들을 뜻합니다. 엄마와 아기를 연결해 아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태를 태아를 키워낸 생명줄이자 시작이라고 여기고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출산 후 아기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왕실의 경우 태평한 나라의 계승 등의 바람을 담아 태를 보관하였습니다. 태항아리는 왕실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습니다. 오늘은 조선 왕실의 태항아리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길일(吉日)을 골라 태를 깨끗하게 물로 일백 번을 씻어 태항아리에 넣고 밀봉하는 세태(洗胎) 의식을 치르고 좋은 땅에 묻었습니다. 태항아리는 태를 담는 작은 항아리인 내항아리와 내항아리를 담는 큰 항아리인 외항아리, 두 개의 항아리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 분청사기나 백자로 만들었습니다. 태항아리는 내항아리와 외항아리의 한 쌍 구조, 몸체 어깨 부분의 4개의 고리, 뚜껑에 연봉형 또는 단추형 손잡이라는 기본적인 외형적 틀을 유지하면서 시기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변화하였습니다.

백자 태항아리 (내항아리), 전체높이 18.7cm, 높이 14.2cm, 
조선,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3369
백자 태항아리 (외항아리), 전체높이 29.9cm, 높이 24.4cm, 
조선,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3370


 태를 항아리에 넣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내항아리의 안쪽 바닥 중앙에 축원(祝願)의 의미를 담아 동전을 놓고 그 위에 깨끗하게 씻은 태를 얹습니다. 그리고 기름종이와 남색 비단으로 내항아리의 입구를 덮어 붉은 끈으로 네 귀퉁이를 단단히 묶었습니다. 이렇게 내항아리를 준비하면 길일을 골라 내항아리를 외항아리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때 내항아리가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내항아리와 외항아리 사이에 솜을 꼼꼼하게 채웠습니다. 내부를 채운 외항아리의 입구는 초주지를 씌우고 감당(엿)을 동그랗게 둘러 밀봉한 다음 뚜껑을 덮고 붉은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다음 붉은 목패를 뚜껑에 매달아 앞에는 출생 날짜와 아기씨 태라고 쓰고, 뒷면에는 태항아리를 밀봉하는 데 참여한 제조와 의관이 서명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든 태항아리는 큰 독에 담아 잠시 두었다가 풍수지리로 봤을 때 길지(吉地)인 산을 골라 태봉(胎峯)으로 정하면 그곳에 태를 묻는 석실인 태실(胎室)을 마련하여 태어난 날, 이름, 태를 묻을 때의 사주 등을 새긴 태지(胎紙)를 같이 묻었습니다.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태의 주인이 장수하고 지혜로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종 태지석 및 태항아리, 태항아리 31.3cm, 태지석 21.7x21.4x3.7cm,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능원 16
성종 태지석 및 태항아리, 외항아리 45.2cm, 내항아리 32.9cm, 태지석 27.8x21.5x6.2cm, 조선 15세기 중반, 국립고궁박물관, 능원 20
정조 태지석 및 태항아리, 외항아리 31.3cm, 내항아리 17.7cm, 태지석 28.9x28.9x5.5cm, 18세기 중반, 국립고궁박물관, 능원 28


 그렇다면 태봉과 태실은 어떻게 준비하였을까요?

 조선 왕실에서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태실 후보지를 등급별로 미리 구분해 두었습니다. 그 후 아기가 태어나면 풍수지리에 정통한 대신을 파견하여 후보지의 지형과 산세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태실산도(胎室山圖)를 그려 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왕의 윤허를 받게 되면 최종적으로 태실을 조성할 장소가 결정되었습니다. 태실은 태봉의 정상 부근에 땅을 판 다음 석함을 넣고 그 안에 태항아리를 담아 돌로 만든 뚜껑으로 덮었습니다. 석함은 큰 돌을 원통 모양으로 다듬은 후 안쪽에 구멍을 파서 태항아리가 들어갈 수 있게 주발 모양으로 만들고, 가장 아래쪽에는 물이 빠질 수 있는 홈을 내었습니다. 석함은 대부분 화강석으로 만들었지만, 종종 다른 돌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정해진 날에 맞춰 태항아리를 묻은 태봉은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거나 경작하는 것 등을 막기 위해 둘레에 금표(禁標)란 글씨를 세긴 비석을 세웠습니다. 또한 태실을 관리하는 자를 두어 태실에 파손된 부분이 생기는 경우 상태를 보고한 다음 파손된 부분을 개수하였습니다.

세종대왕자태실, 경상북도 성주군, 사적 제444호청주 영조 태실,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북도기념물 제69호


 태실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는 경우 그 태실은 위엄을 더하고 격식을 높이고자 가봉(加封)하였습니다. 태실을 가봉할 때는 부도와 같은 석조물을 추가로 설치하고 그 주위에 팔각 난간과 큰 비석을 세웠습니다. 이때 가봉하기 전의 태실은 아기 태실, 가봉한 태실은 가봉 태실이라고 하였습니다. 태실의 가봉이 완료된 후에는 조정에 보고하기 위해 주변의 산세를 함께 그린 태봉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순조 태봉도. 141.2x82.9cm, 종이에 수묵담채, 1806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순조 가봉 태실 부분 확대 모습


 시간이 흐른 현재 태항아리를 묻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기와 이어졌던 흔적을 남기고 추억하는 일은 다른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영상

국립고궁박물관 – 영상으로 알아보는 태실의 조성 과정

https://www.youtube.com/watch?v=PVyLmamSIhM

영상 Timeline

0:00 – 1:11 태를 태항아리에 넣다

1:12 – 1:54 태봉을 정해 태항아리를 옮기다

1:55 – 2:12 태항아리를 태봉에 묻다 (아기 태실)

2:15 – 3:06 태실을 가봉하다 (가봉 태실)


참고 문헌

심현용, 2010, 朝鮮王室 胎室石函의 現況과 樣式變遷, 국립문화재연구원,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Vol.43 No.3 [2010], pp 208-241

윤석인, 2010, 朝鮮王室 胎항아리 變遷 硏究, 한국대학박물관협회, 고문화 Vol.75 No.- [2010], pp 53-79

국립고궁박물관 – 2018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 특별전 도록

 

참고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가유산포털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태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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