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盒)이란 그릇을 아시나요? 합(盒)은 우묵한 그릇에 뚜껑이 있는 그릇을 말합니다. 바깥공기와 최대한 덜 닿아야 하는 내용물 혹은 귀중품을 담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뚜껑과 몸체를 따로 만들면서도 밀폐성이 높아야 하는 그릇이라 뚜껑과 몸체가 딱 들어맞게 만드는 게 꽤 어려운 물건이기도 합니다.
합은 쓰임이 다양해서 안에 보관하는 내용물의 종류에 따라서 이름을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약이나 연고를 보관하면 약합(藥盒), 향을 보관하면 향합(香盒), 찻잎을 보관하면 차합(茶盒) 같은 식으로 말이죠. 쓰임에 따라 둥근 모양, 각진 모양,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 손 두 개가 들어갈 만한 크기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여러 용도의 합 중에서도 화장품을 담았던 합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화협옹주 묘 출토 유물, 18세기, 도자기, 금속, 국립고궁박물관
이 유물들은 2015년 발견된 영조의 7녀인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유물로, 직접 생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도구들입니다. 합 내부에 분과 연지 등으로 추정되는 유기물들이 남아있어 화장품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자청화초화문합, 높이 3.3cm, 지름 4.8cm,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6550 머릿기름합, 높이 5.2cm, 지름 6.4cm, 도자기, 국립고궁박물관, 궁중 244
이렇게 화장품을 담아서 사용하는 합은 분합(粉盒)이라고 합니다. 합에 담는 화장품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는데, 몸통이 길고 뚜껑이 짧아 액체류를 담기 적합해 보이는 합에는 머릿결을 관리할 수 있는 기름이나 피부 관리에 필요한 미안수 등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합에는 끈적한 연고 형태의 화장품을 담거나 가루 형태의 화장품을 미리 담아두었다가 같이 출토된 그릇에 필요한 만큼 덜어서 화장에 적합한 질감으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 잘 맞는 제형을 맞추기 위해 여러 화장품을 섞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점은 조상님도 비슷했나 봅니다.
화협 옹주의 묘에서 나온 분합은 팔각형 모양의 합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청나라와 일본에서 온 수입 제품입니다. 분합은 크기가 작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화려하고 섬세한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국가의 경제력이 회복되고 조선의 도자기 생산량은 점차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자기를 굽는 분원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시장에 도자기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백자는 왕실에 납품하던 고급품에서 대중적인 물품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급 도자기의 대표 격인 수입 도자기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당시 청과 일본의 도자 기술은 조선보다 더 발전해있어 더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기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18세기, 도자기, 유리 등, 국립고궁박물관
당시 청의 물건을 들여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사신들의 연경 사행입니다. 연경 사행은 1637년부터 1894년까지 약 600여 회 이루어졌는데, 사은사들은 여정 중 청의 고위직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면 회사나 증여의 형태로 자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긴 여행 기간 중 직접 물건을 구입해 조선으로 들여오기도 하였습니다. 화협 옹주의 자매인 화유 옹주의 묘에서 발견된 유물 중 청의 공예품은 화유 옹주의 남편인 황인점이 사행단에 참여했을 때 구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허가에 따라 청으로 넘어가 무역이 가능했던 상인들을 통한 것입니다. 이들은 청의 상인들과 거래를 통해 청나라에서 내수용으로 거래되던 청화 백자를 조선에 수입하였고, 이들을 통해 청의 자기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름답고 섬세한 도자기 합을 수집하고, 그 속에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을 보관했던 모습을 보니 시대가 어느 때이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곽희원, 2020, 「18세기 조선 왕실 화장용 자기의 특징과 수용 과정 : <화협옹주묘 출토품>을 중심으로」, 古宮文化 Vol.- No.13 [2020], 국립고궁박물관, pp. 31-61
김은경, 2017, 「18세기 조선 유입 청대 법랑자기 연구」 , 미술사학연구 293권, 한국미술사학회, pp. 65-93
참고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합(盒)이란 그릇을 아시나요? 합(盒)은 우묵한 그릇에 뚜껑이 있는 그릇을 말합니다. 바깥공기와 최대한 덜 닿아야 하는 내용물 혹은 귀중품을 담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뚜껑과 몸체를 따로 만들면서도 밀폐성이 높아야 하는 그릇이라 뚜껑과 몸체가 딱 들어맞게 만드는 게 꽤 어려운 물건이기도 합니다.
합은 쓰임이 다양해서 안에 보관하는 내용물의 종류에 따라서 이름을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약이나 연고를 보관하면 약합(藥盒), 향을 보관하면 향합(香盒), 찻잎을 보관하면 차합(茶盒) 같은 식으로 말이죠. 쓰임에 따라 둥근 모양, 각진 모양,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 손 두 개가 들어갈 만한 크기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여러 용도의 합 중에서도 화장품을 담았던 합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화협옹주 묘 출토 유물, 18세기, 도자기, 금속, 국립고궁박물관
이 유물들은 2015년 발견된 영조의 7녀인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유물로, 직접 생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도구들입니다. 합 내부에 분과 연지 등으로 추정되는 유기물들이 남아있어 화장품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자청화초화문합, 높이 3.3cm, 지름 4.8cm, 백자,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6550 머릿기름합, 높이 5.2cm, 지름 6.4cm, 도자기, 국립고궁박물관, 궁중 244
이렇게 화장품을 담아서 사용하는 합은 분합(粉盒)이라고 합니다. 합에 담는 화장품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는데, 몸통이 길고 뚜껑이 짧아 액체류를 담기 적합해 보이는 합에는 머릿결을 관리할 수 있는 기름이나 피부 관리에 필요한 미안수 등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합에는 끈적한 연고 형태의 화장품을 담거나 가루 형태의 화장품을 미리 담아두었다가 같이 출토된 그릇에 필요한 만큼 덜어서 화장에 적합한 질감으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 잘 맞는 제형을 맞추기 위해 여러 화장품을 섞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점은 조상님도 비슷했나 봅니다.
화협 옹주의 묘에서 나온 분합은 팔각형 모양의 합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청나라와 일본에서 온 수입 제품입니다. 분합은 크기가 작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화려하고 섬세한 무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국가의 경제력이 회복되고 조선의 도자기 생산량은 점차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자기를 굽는 분원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시장에 도자기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백자는 왕실에 납품하던 고급품에서 대중적인 물품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급 도자기의 대표 격인 수입 도자기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당시 청과 일본의 도자 기술은 조선보다 더 발전해있어 더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기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화유옹주 묘 출토 유물, 18세기, 도자기, 유리 등, 국립고궁박물관
당시 청의 물건을 들여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사신들의 연경 사행입니다. 연경 사행은 1637년부터 1894년까지 약 600여 회 이루어졌는데, 사은사들은 여정 중 청의 고위직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면 회사나 증여의 형태로 자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긴 여행 기간 중 직접 물건을 구입해 조선으로 들여오기도 하였습니다. 화협 옹주의 자매인 화유 옹주의 묘에서 발견된 유물 중 청의 공예품은 화유 옹주의 남편인 황인점이 사행단에 참여했을 때 구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허가에 따라 청으로 넘어가 무역이 가능했던 상인들을 통한 것입니다. 이들은 청의 상인들과 거래를 통해 청나라에서 내수용으로 거래되던 청화 백자를 조선에 수입하였고, 이들을 통해 청의 자기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름답고 섬세한 도자기 합을 수집하고, 그 속에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을 보관했던 모습을 보니 시대가 어느 때이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곽희원, 2020, 「18세기 조선 왕실 화장용 자기의 특징과 수용 과정 : <화협옹주묘 출토품>을 중심으로」, 古宮文化 Vol.- No.13 [2020], 국립고궁박물관, pp. 31-61
김은경, 2017, 「18세기 조선 유입 청대 법랑자기 연구」 , 미술사학연구 293권, 한국미술사학회, pp. 65-93
참고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