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미술]백제의 미소 아래, 놓치기 쉬운 불상의 수인 이야기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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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야호!’를 보다가 1,400년 전 불상의 손을 떠올렸다


최근 리센느 ‘거제 야호’가 예상 밖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갸루 스타일로 등장해 거제 출신 원이와 주고받은 한마디가 숏폼을 통해 퍼졌고, 이후 두 사람은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갸루 차림으로 파라파라를 추고 현지의 갸루들과 만나는 콘텐츠도 촬영했습니다. ‘거제 야호’가 화제가 된 뒤 리센느에 대한 음원·검색 관심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 장면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일본 문화를 한국에서 따라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본에서 형성된 갸루와 파라파라가 한국의 K-pop 콘텐츠 안으로 들어오고, 일본인 미나미와 거제 출신 원이의 캐릭터가 더해져 ‘거제 야호’라는 전혀 다른 맥락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일본으로 가 그 문화의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물론 현대의 K-pop 콘텐츠와 1,400여 년 전의 불교문화 전파를 같은 현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공유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다른 곳으로 건너가면 원래 모습 그대로 남을까요?

 

그 질문을 생각하다 보면 충남 서산 가야산 계곡의 한 불상이 떠오릅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입니다.

이 불상은 흔히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둥근 얼굴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려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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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본존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습니다. 불교미술에서는 이러한 손짓을 각각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을 없애고 중생의 바람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지닌 수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널리 나타나는 손 모양입니다.


그런데 서산의 본존을 자세히 보면 왼손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여원인의 모습과 조금 다릅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가지런히 편 것이 아니라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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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행을 재현 AI 생성 이미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확대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처음에는 두 손가락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어느 지역에서 전해진 특정한 형식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고대 불상을 비교해 보면 이야기는 그보다 복잡합니다. 어떤 불상은 다섯 손가락을 펼치고, 어떤 불상은 두 손가락을 굽힙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좌우가 바뀌기도 하고, 보살상에서는 한 손으로 수인을 취하는 대신 다른 손에 지물을 들기도 합니다.

 

같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이라 해도 실제 손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서산 마애불의 굽은 두 손가락은 그래서 ‘숨겨진 암호’라기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옛사람들은 같은 불교의 손짓을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했을까요?

 

이제 그 손 모양을 찾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2장. ‘백제의 미소’ 아래에는 두 손이 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자연 암벽에 세 인물을 함께 새긴 백제 후기의 마애불입니다. 가운데 큰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보주를 든 보살입상, 다른 한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자리합니다. 서로 다른 형식의 두 보살을 한 여래의 협시로 배치했다는 점부터 독특합니다. 지금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불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유명한 ‘백제의 미소’입니다. 그러나 얼굴에서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면, 그 미소만큼이나 눈여겨볼 두 손이 보입니다. 불·보살이 취하는 손의 자세를 수인(手印)이라고 합니다. 수인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불상의 성격과 신앙적 의미를 드러내는 하나의 도상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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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마애불의 본존은 한 손을 위로 들어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고, 다른 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습니다. 위로 든 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아래로 내린 손은 여원인(與願印)입니다.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고 안심시키는 뜻을 지니며, 여원인은 중생이 바라는 바를 받아들이고 베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금 쉽게 풀어 말하면 두 손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의 바람을 받아들이겠다.”

다만 수인을 오늘날의 이모티콘처럼 하나의 손 모양에 하나의 뜻이 정확히 대응하는 기호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특정한 한 부처만 사용하는 상징이 아니었고, 삼국시대 여러 불상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더구나 같은 이름의 수인이라 해도 실제 불상을 자세히 보면 손가락을 펴거나 굽히는 방식, 손을 두는 위치가 조금씩 다릅니다.


3장. 같은 여원인인데, 왜 손가락은 다를까

           - 아직은 알기 어려운 여원인의 다양성


이제 서산 마애불 본존의 왼손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굽힌 모습입니다. 우리가 흔히 배우는 여원인은 다섯 손가락을 편 모습인데, 서산의 손은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면 굽힌 두 손가락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손가락을 굽힌 여원인과 모두 편 여원인이 서로 다른 교리를 뜻했다고 볼 만한 뚜렷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옛 불상들을 비교해 보면 수인의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난징에서 발견된 남조시대 보살상 가운데에는 서산 마애불처럼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굽힌 여원인이 있습니다. 반면 산둥 지역의 북위~북제 관음보살상에서는 다섯 손가락을 길게 편 여원인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양은경, 남조 관음보살상에 대한 연구 - 수인과 지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8.


부여 신리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면서도 우리가 흔히 보는 것과 좌우 손의 배치가 다르고, 다른 삼국시대 보살상에서는 다시 두 손가락을 굽힌 모습이 나타납니다. 즉,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굽힌 손’은 백제만의 특별한 손모양도 아니고, 어느 한 지역을 가리키는 표지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이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지만, 실제 불상에서는 손가락을 펴거나 굽히는 방식과 손의 위치가 조금씩 달랐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책이나 도감에서 보는 수인은 여러 불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한 기본형에 가깝습니다. 실제 5~7세기의 불상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손을 하고 있었습니다.


4장. 같은 손짓, 고구려·백제·신라는 어떻게 달리 만들었을까


수인의 손가락 모양만으로 어느 지역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손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불상 전체를 보겠습니다. 같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한 불상도 얼굴과 몸, 옷주름과 광배를 함께 보면 서로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먼저 고구려의 국보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입니다.


1963년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광배 뒷면에는 ‘연가 7년’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불상이며, 일반적으로 539년 고구려에서 만든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불상도 시무외인과 여원인 계열의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산 마애불과 나란히 놓고 보면 분위기는 상당히 다릅니다. 갸름한 얼굴, 크게 강조된 손, 좌우로 힘차게 뻗은 옷자락과 불꽃처럼 표현된 광배가 작은 금동불에 강한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이 모습에는 중국 불교조각과 비교되는 요소가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여러 외래 요소가 고구려에서 다시 결합되면서 고구려 불상만의 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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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칠년명 금동불입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사진 출처 : 국가유산청)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서는 같은 계열의 손짓이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작은 금동불이 아니라 커다란 자연 암벽에 새겨졌고, 풍만한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번집니다. 옷주름도 연가7년명 불상처럼 힘차게 퍼지기보다는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여기에 보주를 든 보살과 반가사유상을 함께 배치한 독특한 삼존 구성까지 더해집니다.


신라에서는 다시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경주 남산 기슭의 보물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세 불·보살상을 1923년 현재 위치에 다시 세운 것입니다. 중앙 여래에서도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전통을 볼 수 있지만, 둥글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짧고 묵직한 신체는 고구려와 백제의 불상과 또 다른 인상을 줍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고구려·백제·신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함께 사용된 불교의 손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수인을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모습의 불상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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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불상의 시무외인과 여원인 모습


고구려에서는 힘 있고 긴장감 있는 모습으로, 백제에서는 부드러운 얼굴과 독특한 삼존 구성으로, 신라에서는 둥근 얼굴과 묵직한 신체로 표현되었습니다. 외부에서 새로운 형식이 전해졌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그것을 각 지역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자기 방식으로 표현했는가입니다. 같은 불교의 손짓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얼굴과 몸을 만들어낸 것. 바로 그 차이에서 불교미술의 다양성이 드러납니다.


5장. 두 손에서 다시 보는 불교미술의 가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본존의 왼손에 굽혀진 두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같은 여원인인데 어떤 불상은 손가락을 모두 펴고, 어떤 불상은 두 손가락을 굽혔을까 하는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했습니다. 여러 불상을 비교해 보니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5~7세기 동아시아 불교미술에서 널리 사용된 손짓이었지만, 실제 모습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모두 펴기도 하고 일부를 굽히기도 했으며, 손의 위치와 방향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서산 마애불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어떤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은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불상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됩니다. 도감에서는 시무외인을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는 수인’, 여원인을 ‘손을 아래로 내려 베푸는 수인’이라고 간단하게 배웁니다. 하지만 실제 국가유산 앞에 서면 그 기본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손들이 보입니다. 같은 이름의 수인도 실제 작품에서는 여러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삼국시대 불교미술을 보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고구려의 연가7년명여래입상,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신라의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나란히 보면 모두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굴과 신체의 비례, 옷주름, 조각의 분위기는 서로 다릅니다. 즉, 같은 불교의 손짓을 공유했다고 해서 같은 불상을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교가 여러 지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도상은 공유되었지만, 그것을 실제 불상으로 만드는 방식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서산 마애불의 두 손은 바로 그런 공통성과 다양성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수인의 손가락 하나만으로 고구려·백제·신라 불상의 계보를 밝히거나,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를 결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얼굴과 신체, 복식, 옷주름, 광배, 제작기법과 같은 훨씬 많은 요소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보다 조금 단순한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불상의 손을 한번 자세히 보는 것.

시무외인은 어떤 뜻일까.
여원인은 왜 아래로 손을 내리고 있을까.
같은 여원인인데 왜 손가락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까.

이런 작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에는 지나쳤던 국가유산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산 마애불은 이러한 관찰에 특히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이 불상은 지금도 백제 사람들이 불상을 새겼던 서산 가야산 계곡의 자연 암벽에 남아 있습니다.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서 만나는 작은 금동불과 달리, 불상이 만들어진 장소와 작품이 지금까지 함께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산 마애불을 바라볼 때에는 유명한 ‘백제의 미소’뿐 아니라 얼굴 아래의 두 손에도 한번 시선을 머물러볼 만합니다.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 왼손은 바라는 것을 베푼다는 여원인입니다. 1,400여 년 전 이 두 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교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익숙한 상징이었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삼국시대 사람들이 불상을 어떻게 만들고 바라보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단서가 됩니다. 처음 이야기는 ‘야호!’라는 현대의 손짓에서 시작했습니다. 익숙한 손동작을 보다가 우연히 오래된 불상의 손을 떠올렸고, 그 손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반도의 삼국과 동아시아 불교미술까지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어쩌면 국가유산을 보는 일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모든 역사와 양식을 알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손가락 하나, 옷주름 하나, 표정 하나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그 작은 차이가 궁금해지는 순간, 국가유산은 더 이상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이 남긴 구체적인 흔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찾는다면 유명한 백제의 미소에서만 시선을 멈추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얼굴 아래의 두 손을 한번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같은 시무외인과 여원인도 하나의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바라본다면, 1,400년 전 불상의 손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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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느(RESCENE) 멤버 원이의 낚시를 응원하던 미나미의 파라파라춤과 함께 외친 
‘물고기 오이데(おいで)’ 밈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패러디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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