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강서대묘 벽화 속 4명의 수호신, 사신도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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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문화유산 추천에서 소개해 드릴 우리의 문화유산은 바로 ‘강서대묘 사신도’입니다.



1. 미디어아트로 보는 문화유산

   올해 2월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이 2년에 걸친 개편을 마치고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선사고대관을 직접 돌아다녀 보면 실제 전시품 못지않게, 영상·그래픽 등으로 형상화된 실감 콘텐츠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특히 기존보다 넓어진 고구려실은 우리 고대사에서 고구려가 지닌 역사적 위상에 걸맞게 다채롭고 풍부한 콘텐츠로 정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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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실 가장 안쪽에 마련된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 고구려 벽화무덤 소재의 미디어아트가 상영되는 공간입니다. 실제 직접 무덤에 들어선 듯한 몰입감으로 연출된 영상관의 첫 번째 상영 콘텐츠는,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강서대묘의 〈사신도(四神圖)〉입니다. 과거 고대인들이 남긴 벽화가 오늘날 디지털 기술로 되살아나는 모습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째서 고구려인들은 무덤 벽에 이토록 공을 들여서 그림을 남겼을까요?” 그리고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 이 그림 안에는 과연 어떤 믿음과 세계관이 담겨 있었던 걸까요?” 지금부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강서대묘의 사신도를 통해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2. 강서대묘

(1) 강서지역의 고구려 고분군, 강서삼묘

   강서삼묘 江西三墓는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있는 고구려시대 고분군으로, 마을 앞 두 줄로 나란히 배치된 3개의 무덤을 가리킵니다. 각 무덤은 그 규모에 따라 소묘·중묘·대묘로 명명되어 구분되며, 이 중 가장 큰 규모로 조성된 강서대묘 江西大墓는 남쪽을 향해 앞줄에 홀로 조성된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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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년(장수왕 15) 고구려는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천도 이후 평양성과 인접한 서안의 강서지역은 고구려 후기의 정치·문화적 중심지로서 기능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유로 이 일대는 현재 고구려의 다양한 유적들이 밀집된 상황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고구려의 ‘무덤’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2004년, 북한 소재 평양·남포·안악 일대의 고구려 무덤 63기가 ‘고구려 고분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2) 강서대묘의 무덤 양식과 구조

   강서대묘는 고구려 후기의 무덤 양식인 ‘돌방무덤’ 형태로 조성된 고분입니다. 강서대묘의 내부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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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대묘 내부 구조 실측도

<사진 출처: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연구」, 2017, 전호태, p.135>

   입구를 기준으로 무덤의 방향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인 ‘널길’과 안쪽 1개의 ‘널방’으로 이루어진 외방무덤에 해당합니다. 무덤 칸의 경우 커다란 화강암 판석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널방의 크기는 가로 3.18m × 세로 3.15m × 높이 3.5m 규모입니다. 천장을 살펴보면 널방 네 모퉁이에 세모 모양의 굄돌을 걸치는 식으로 반복해 모를 줄여가며 올리는 ‘모줄임천장’ 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굄돌을 안으로 휘며 쌓아 올린 축조방식은 덮개 흙의 무게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도 동시에 미적으로도 부드럽고 안정적인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3) 강서대묘의 주인은?

   강서대묘의 축조 시기는 무덤의 구조와 벽화 내용, 표현 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대체로 6세기 말 ~ 7세기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굴과 약탈에 취약한 돌방무덤의 특성상, 강서대묘 역시 다른 고구려의 고분과 마찬가지로 묘주를 특정할 수 있는 출토 유물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서대묘는 무덤의 규모와 형식이 매우 웅장하다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일찍이 이를 왕릉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묘주를 고구려 왕실 인물에서 찾으려는 연구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일각에서는 고구려 왕호 가운데 많은 경우가 ‘장지명(葬地名), 즉 왕이 묻힌 장소의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왕릉 비정의 단서로 삼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왕호와 무덤의 입지 조건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강서대묘의 주인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강서대묘는 평야[平] 한가운데 위치하여 동쪽과 남쪽에 대동강의 지류 하천[陽]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형적 조건과 무덤의 규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묘주는 고구려 제25대 왕 ‘평원왕(平原王)’ 또는 그의 아들 제26대 왕 ‘영양왕(嬰陽王)’일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묘주의 정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 규모와 위상을 종합해 볼 때, 강서대묘가 고구려 후기의 대표적인 ‘왕릉’급 무덤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3. 벽화에 담긴 기이한 존재, 사신 四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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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대묘 널방의 벽면에는 

장식무늬와 함께 사신 四神을 주제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신도는 돌벽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채색한 뒤 먹으로 테두리를 넣고 

다시 세부를 다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채색에서는 적색·자색·갈색·황색·녹색 등 다채로운 색깔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돌벽 위에 직접 그려진 덕분에, 

20세기 초 발굴 당시에도 비교적 양호한 보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강서대묘 널방 투시도 <사진 출처: 한성백제박물관>                                                                                                                                                                                                                                                                                                                                                     

(1) 무덤 벽화 속 〈사신도〉 도상

   도상 圖像은 그림 속에 담긴 상징적인 인물 또는 모습을 말하며, 대체적으로 종교나 믿음 같은 특정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그려진 형상을 뜻합니다. 사신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가리키는 신령스러운 동물로서 고대 동아시아의 별자리 개념인 ‘28수(宿)’로부터 탄생한 존재입니다. 동쪽 〈청룡(靑龍)〉, 서쪽〈백호(白虎)〉, 남쪽〈주작(朱雀)〉 그리고 북쪽〈현무(玄武)〉가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우주의 질서를 진귀하게 여기고 이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신에 대한 개념과 도상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사신도는 중국 고대부터 일종의 유행으로서 무덤의 내부를 장식하는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중국 문화가 전래하면서 사신에 대한 개념과 그림 표현이 함께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강서대묘의 사신도

   이제 강서대묘 널방의 네 벽면에 그려진 사신도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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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황도상 ‘동쪽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는 동벽 <청룡>입니다. 몸체 각 부분의 치밀한 묘사와 화려한 채색이 두드러지는 청룡은 남쪽을 향해 왼쪽 앞발을 크게 뻗으며 내려가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커다란 S자를 이룬 가느다란 목과 굵은 몸통, 유연하게 뻗친 꼬리와 뒤로 뻗은 네 다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청룡의 자태를 자연스럽고 매우 힘 있게 묘사하였습니다. 부릅뜬 커다란 두 눈과 입을 벌린 채 길게 늘어진 붉은 혀, 그리고 가늘게 뻗은 두 뿔 등은 더 이른 시기의 고분벽화 속 사신도 도상 전통을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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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서쪽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는 서벽<백호>입니다. 백호는 기본적으로 청룡에서 묘사된 자세와 태도를 지니면서도 남쪽 널방 입구를 향해 포효하며 앞으로 내딛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청룡과는 달리 흰 털의 신령스러운 백호를 묘사하기 위해 호랑이상 얼굴을 제외하고 몸통에서의 치밀한 세부 묘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목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선이 가파르며, 가늘어 보이는 듯한 네 다리와 가슴부위의 날개, 그리고 긴 꼬리의 움직임이 백호 특유의 용맹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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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는 북벽<현무>는 ‘뱀’과 ‘거북’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를 취한 현무는 네 발을 휘저으며 움직이는 거북과 몸을 여러 차례 꼬아 만든 뱀의 몸 선이 한데 어우러져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거북과 뱀의 크게 벌린 입에서 불꽃같이 뿜어 나오는 듯한 기운은 음과 양의 흐름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기운이 마침내 한 지점에서 만남으로써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우주의 질서가 재생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을 통해 현무는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자신이 맡은 수호자 역할을 완성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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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널방 남벽<주작>입니다. 주작은 ‘남쪽의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며 ‘봉황’의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로 나뉜 남벽의 각 벽면에는 암수 주작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크게 부릅뜬 눈, S자 형태로 휜 목과 몸통, 그리고 둥근 원형에 가깝게 활짝 편 날개와 반원 꼴로 힘 있게 말려 올라간 꽁지깃 등은 주작을 강렬하고도 위엄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강서대묘의 주작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하단부입니다. 주작의 두 다리 밑의 공간을 보면, 작은 크기로 그려진 산악(山岳)의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는 주작이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임을 표현한 장치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기법은 앞선 시기의 고분벽화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특징으로, 아득한 곳에 묘사된 산줄기와 그 위에 떠 있는 주작의 모습은 곧 이들이 우주적 수호신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3) 강서대묘의 사신은 알고 보면 오신 五神 이다?

   이 밖에도 강서대묘의 벽화에는 또 다른 상징적인 동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널방 천장에 그려진 ‘황룡’입니다. 모줄임구조의 천장을 살펴보면, 굄돌의 각 면에 상서로운 동물들과 연꽃 문양으로 장식하고 몸을 동그랗게 감은 상태에서 꿈틀거리며 승천하려는 한 마리의 황룡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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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벽에 새겨진 고구려인의 믿음, 오늘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다

   강서대묘의 벽화는 고구려인이 믿었던 내세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고구려인들이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벽화 속 사신은 단순히 방위를 상징하는 존재를 넘어, 죽은 자의 영혼을 보호하고 우주공간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고구려인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세계를 담은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이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았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고대인이 벽에 그린 그림들은 오늘날 미디어아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문화유산을 마주할 수 있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 깊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자신들의 믿음과 상상으로 표현한 고구려인들.. 여러분이라면 어떤 그림을 벽에 남기고 싶으신가요?


(이미지 클릭 시 진흥원에서 촬영한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무덤 벽화 '전시실 현장'과 '강서대묘 디지털 실감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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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실감 영상관 3 〈고구려 벽화무덤〉 - '고구려 사람들이 바랐던 내세의 삶'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신문>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사계절, 2001.

-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 기경량, 「평양 지역 고구려 왕릉의 위치와 피장자」, 『한국고대사연구』 88, 한국고대사학회, 2017.

- 김윤경, 「고구려 고분 벽화와 금단(金丹) 도교의 세계관 – 오희분4호묘와 강서대묘를 중심으로 -」, 『사화와 철학』 39, 사회와철학연구회, 2020.

- 전호태,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연구」, 『한국고대사연구』 104, 한국고대사학회, 2021.

-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문화재연구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성백제박물관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실 현장 사진들은 모두 한국전통미술융합진흥원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 강서대묘 사신도 〈모사본〉 : 도쿄예술대학교 화가 '오바 스네키치[小場恒吉]' 제작 모사본, 1930년대 작 (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강서대묘 사신도 〈원형 일러스트 복원본〉 : 『천상의  문양예술, 고구려 고분벽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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