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현대인은 스마트폰, 시계 등을 사용하여 시간을 확인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언제든지,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중요한 일정을 관리하기에도 수월해졌습니다. 또, 하루, 한 달, 일년의 시간을 나누는 단위와 체계를 만들고 약속하여 누구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알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시계는 해시계였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지만, 태양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막대를 세우고 태양빛을 받아 생기는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되었습니다. 해시계는 태양과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막대, 두 가지 물건만 있으면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고, 해가 없는 밤이나 흐린 날이 아니면 시간을 측정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해시계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
앙부일구, 높이 10cm, 지름 24.3cm, 조선, 금속,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창덕 12944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해시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앙부일구(仰釜日晷)입니다. 앙부일구의 앙부(仰釜)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 일구(日晷)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오목한 반구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이름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해그림자를 받는 시반면(時盤面)이 편평한 일반적인 해시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해시계, 지름 10.7cm, 두께 1.2cm, 고려, 돌,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7753
| 해시계, 가로 6cm, 세로 13cm, 높이 2cm, 한국, 나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15155 |
앙부일구는 해그림자를 받는 오목한 ‘시반(時盤)’과 그림자를 만드는 시곗바늘인 ‘영침(影針)’, 시반을 받쳐 고정하는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침은 남북 방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한쪽 끝은 정남쪽 방향에 고정되어있으며 다른 뾰족한 끝은 정북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서 있습니다. 영침이 비스듬히 꽂힌 이유는 당시 한양의 지면에서 북극을 바라보는 각도인 37도 20분에 맞춰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움직임과 절기에 따라 바늘의 그림자는 늘었다 줄었다 하며 시각을 표시하였습니다.
앙부일구의 세로선과 가로선
앙부일구의 시반 안쪽에 새겨진 세로선은 시각을, 가로선은 24절기를 알 수 있는 선입니다. 선의 끝에는 시각과 절기를 나타내는 글자가 적혀져 있습니다.
앙부일구의 시법은 조선 전기와 후기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앙부일구가 처음 만들어진 조선 초기에는 12시 100각법을 이용하여 시각을 표시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이 1645년에 시헌력(時憲曆)을 도입하면서 12시 96각법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앙부일구들은 12시 96각법으로 표시되어있어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시 100각법
시(時) |
초(初) | 정(正) |
초각 (初刻) | 일각 (一刻) | 이각 (二刻) | 삼각 (三刻) | 사각 (四刻) | 초각 (初刻) | 일각 (一刻) | 이각 (二刻) | 삼각 (三刻) | 사각 (四刻) |
*사각(四刻)은 다른 각(刻)의 1/6 간격이다. 12시 100각법에서는 하루를 12등분의 시(時)로 나누고 시마다 12간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다음 각각의 시를 초(初)와 정(正)으로 2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매초와 정에 5개의 각을 배분하였습니다. 그중 마지막 각은 다른 각들의 1/6 크기 밖에 안되는 작은 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배분된 전체 각을 모두 합하면 하루가 100각이 됩니다.
12시 100각법의 100각환 눈금 매초와 정이 4개의 대각(6분)과 한 개의 소각(1분)으로 나뉘었음을 잘 보여준다. | 낮 오시 부분을 확대한 이미지
| 국사편찬위원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2007, p. 76. 그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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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96각법
시(時) |
초(初) | 정(正) |
초각 (初刻) | 일각 (一刻) | 이각 (二刻) | 삼각 (三刻) | 초각 (初刻) | 일각 (一刻) | 이각 (二刻) | 삼각 (三刻) |
12시 96각법은 12시 100각법과 마찬가지로 하루를 12등분의 시(時)로 나누고 시마다 12간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시를 초(初)와 정(正)으로 2등분으로 나눈 다음 초와 정을 다시 4개의 각(刻)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루에 배분된 전체의 각을 모두 합하면 하루가 96각으로 이루어지며, 하나의 각은 현대의 15분과 같아 12시 96각법으로 표기된 시간은 현대의 시각법으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앙부일구에는 해가 떠있는 묘시(5시~7시)부터 해가 지는 유시(17시~19시)까지 7개의 시각을 긴 세로선으로 그어놓고, 그 사이를 12시 96각법에 따라 8개의 세로선으로 다시 나누어 표시하였습니다.
앙부일구의 구조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
창덕 12944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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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선인 절기선은 총 13개로 태양의 고도에 맞추어 새겨졌습니다. 춘분과 추분에 가까운 절기선은 간격이 넓고, 동지와 하지로 갈수록 절기선의 간격이 좁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앙부일구의 절기선은 왜 13개일까요? 앙부일구의 절기선은 동지와 하지를 표시하는 절기선을 경계로 하여 그 사이에 있는 봄과 가을의 22개 절기들이 서로 짝을 이루어 하나의 절기선을 공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지와 하, 11개의 절기선을 합쳐 총 13개의 절기선이 그려져있는 것입니다.
공공 시계에서 휴대용 시계까지
처음으로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혜정교(惠政橋)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하여 일영(日影)을 관측하였다.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김돈(金墩)이 명(銘)을 짓기를, "모든 시설(施設)에 시각보다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경루(更漏)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중략)… 구멍이 꺾이는 데 따라서 도니 겨자씨를 점찍은 듯하고, 도수(度數)를 안에 그었으니 주천(周天)의 반이요,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소소(昭昭)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일할 때를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
『세종실록』 권 66, 세종 16년 10월 2일 을사 |
『세종실록』에 따르면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 10월 2일 혜정교와 종묘 앞 두 곳에 처음 설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하여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였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각을 나타내는 십이지신을 그림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보아 앙부일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시설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국가로, 하늘을 잘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작물을 수확하는 등 농사의 여러 단계를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밟아가야 한 해의 농사가 잘 마무리되고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앙부일구가 많은 사람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제작된 것은 백성들의 삶을 더 유용하게 만들고 나라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시각과 절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편리함을 가진 앙부일구였기 때문에 점차 민간에서도 이를 본 뜬 해시계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손에 쥐고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앙부일구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휴대용 앙부일구는 방향을 제대로 맞추어야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어 작은 나침반이 같이 붙어있는 구조로 제작되었습니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들고 다니기 간편해 군사적 용도나 여행할 때 사용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양반들은 휴대용 앙부일구와 해시계를 부채에 매다는 선추로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서양의 회중시계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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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앙부일구, 세로 5.6cm, 가로 3.4cm, 조선, 석,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15157
| 선추, 길이 27cm 너비 3.6cm, 조선, 나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94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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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잘 맞추는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태양과 막대, 그림자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시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앙부일구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시계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김상혁, 2007, 세종대(世宗代) 해시계의 구조(構造)와 용법(用法)에 대한 연구(硏究), 충북사학 19권, 충북사학회
김종엽, 2018,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깃든 그림자, 앙부일구, 문화재사랑 Vol.164, 문화재청
윤용현, 민병희, 김상혁. 2023, 운룡주(雲龍柱) 보물 앙부일구의 특성과 제작 기술,
文化財 56권 4호, KISTI
이화선, 구사회, 2016, 동아시아의 해시계와 문화교류연구 - 조선의 <앙부일구(仰釜日晷)>와 원의 <앙의(仰儀)>를 중심으로, 문화와 융합 38권 4호, 한국문화융합학회
국사편찬위원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2007,
참고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지금의 현대인은 스마트폰, 시계 등을 사용하여 시간을 확인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언제든지,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중요한 일정을 관리하기에도 수월해졌습니다. 또, 하루, 한 달, 일년의 시간을 나누는 단위와 체계를 만들고 약속하여 누구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알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요?
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시계는 해시계였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을 보며 시간을 가늠했지만, 태양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막대를 세우고 태양빛을 받아 생기는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되었습니다. 해시계는 태양과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막대, 두 가지 물건만 있으면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고, 해가 없는 밤이나 흐린 날이 아니면 시간을 측정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해시계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
앙부일구, 높이 10cm, 지름 24.3cm, 조선, 금속,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창덕 12944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해시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앙부일구(仰釜日晷)입니다. 앙부일구의 앙부(仰釜)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 일구(日晷)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오목한 반구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이름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해그림자를 받는 시반면(時盤面)이 편평한 일반적인 해시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해시계, 지름 10.7cm, 두께 1.2cm, 고려, 돌,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7753
해시계, 가로 6cm, 세로 13cm, 높이 2cm, 한국, 나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 15155
앙부일구는 해그림자를 받는 오목한 ‘시반(時盤)’과 그림자를 만드는 시곗바늘인 ‘영침(影針)’, 시반을 받쳐 고정하는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침은 남북 방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한쪽 끝은 정남쪽 방향에 고정되어있으며 다른 뾰족한 끝은 정북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서 있습니다. 영침이 비스듬히 꽂힌 이유는 당시 한양의 지면에서 북극을 바라보는 각도인 37도 20분에 맞춰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움직임과 절기에 따라 바늘의 그림자는 늘었다 줄었다 하며 시각을 표시하였습니다.
앙부일구의 세로선과 가로선
앙부일구의 시반 안쪽에 새겨진 세로선은 시각을, 가로선은 24절기를 알 수 있는 선입니다. 선의 끝에는 시각과 절기를 나타내는 글자가 적혀져 있습니다.
앙부일구의 시법은 조선 전기와 후기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앙부일구가 처음 만들어진 조선 초기에는 12시 100각법을 이용하여 시각을 표시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이 1645년에 시헌력(時憲曆)을 도입하면서 12시 96각법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앙부일구들은 12시 96각법으로 표시되어있어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시 100각법
시(時)
초(初)
정(正)
초각
(初刻)
일각
(一刻)
이각
(二刻)
삼각
(三刻)
사각
(四刻)
초각
(初刻)
일각
(一刻)
이각
(二刻)
삼각
(三刻)
사각
(四刻)
*사각(四刻)은 다른 각(刻)의 1/6 간격이다.
12시 100각법에서는 하루를 12등분의 시(時)로 나누고 시마다 12간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다음 각각의 시를 초(初)와 정(正)으로 2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매초와 정에 5개의 각을 배분하였습니다. 그중 마지막 각은 다른 각들의 1/6 크기 밖에 안되는 작은 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배분된 전체 각을 모두 합하면 하루가 100각이 됩니다.
12시 100각법의 100각환 눈금
매초와 정이 4개의 대각(6분)과 한 개의 소각(1분)으로 나뉘었음을 잘 보여준다.
낮 오시 부분을 확대한 이미지
12시 96각법
시(時)
초(初)
정(正)
초각
(初刻)
일각
(一刻)
이각
(二刻)
삼각
(三刻)
초각
(初刻)
일각
(一刻)
이각
(二刻)
삼각
(三刻)
12시 96각법은 12시 100각법과 마찬가지로 하루를 12등분의 시(時)로 나누고 시마다 12간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시를 초(初)와 정(正)으로 2등분으로 나눈 다음 초와 정을 다시 4개의 각(刻)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루에 배분된 전체의 각을 모두 합하면 하루가 96각으로 이루어지며, 하나의 각은 현대의 15분과 같아 12시 96각법으로 표기된 시간은 현대의 시각법으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앙부일구에는 해가 떠있는 묘시(5시~7시)부터 해가 지는 유시(17시~19시)까지 7개의 시각을 긴 세로선으로 그어놓고, 그 사이를 12시 96각법에 따라 8개의 세로선으로 다시 나누어 표시하였습니다.
가로선인 절기선은 총 13개로 태양의 고도에 맞추어 새겨졌습니다. 춘분과 추분에 가까운 절기선은 간격이 넓고, 동지와 하지로 갈수록 절기선의 간격이 좁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앙부일구의 절기선은 왜 13개일까요? 앙부일구의 절기선은 동지와 하지를 표시하는 절기선을 경계로 하여 그 사이에 있는 봄과 가을의 22개 절기들이 서로 짝을 이루어 하나의 절기선을 공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지와 하, 11개의 절기선을 합쳐 총 13개의 절기선이 그려져있는 것입니다.
공공 시계에서 휴대용 시계까지
『세종실록』에 따르면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 10월 2일 혜정교와 종묘 앞 두 곳에 처음 설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하여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였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각을 나타내는 십이지신을 그림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보아 앙부일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시설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국가로, 하늘을 잘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작물을 수확하는 등 농사의 여러 단계를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 밟아가야 한 해의 농사가 잘 마무리되고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앙부일구가 많은 사람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제작된 것은 백성들의 삶을 더 유용하게 만들고 나라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시각과 절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편리함을 가진 앙부일구였기 때문에 점차 민간에서도 이를 본 뜬 해시계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손에 쥐고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앙부일구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휴대용 앙부일구는 방향을 제대로 맞추어야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어 작은 나침반이 같이 붙어있는 구조로 제작되었습니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들고 다니기 간편해 군사적 용도나 여행할 때 사용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양반들은 휴대용 앙부일구와 해시계를 부채에 매다는 선추로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서양의 회중시계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방향을 잘 맞추는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태양과 막대, 그림자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시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 앙부일구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시계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김상혁, 2007, 세종대(世宗代) 해시계의 구조(構造)와 용법(用法)에 대한 연구(硏究), 충북사학 19권, 충북사학회
김종엽, 2018,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깃든 그림자, 앙부일구, 문화재사랑 Vol.164, 문화재청
윤용현, 민병희, 김상혁. 2023, 운룡주(雲龍柱) 보물 앙부일구의 특성과 제작 기술,
文化財 56권 4호, KISTI
이화선, 구사회, 2016, 동아시아의 해시계와 문화교류연구 - 조선의 <앙부일구(仰釜日晷)>와 원의 <앙의(仰儀)>를 중심으로, 문화와 융합 38권 4호, 한국문화융합학회
국사편찬위원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2007,
참고 홈페이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